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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봉수 의정부 경민대 자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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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2014-12-31 05:54:02
'저녁이 있는 삶'

 

 

한 해를 정리하는 연말이, 그리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이 예의 분주한 시간 속을 지나고 있다.

대개 저녁은 일과로부터의 분리나 휴식 혹은 자유를 의미하지만 일상에서 가족이나 개인이 그를 오붓하게 즐기기란 참 쉽지가 않다. 어느덧 우리는 향유할 수 있는 저녁 시간대를 시나브로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평범한 구절이 범상치 않은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 온 것은 2012년 대선 정국에서였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섰던 손학규 후보가 내세웠던 선거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은 신선한 충격을 줬다.

정치에서 익숙한, 흔한 직설적 구호가 아닌, 메타포metaphor를 쓴, 은유적 표현이었기에 반향 또한 잔잔하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저녁이 있는 삶'은 여유 있는 삶의 풍경을 그리게 하며 포용력 있는 인간미를 품고 있었다. 참으로 함축적이었고 모처럼 정치권에서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수작秀作의 이슈 issue였다.

정치에서 사용하는 슬로건은 그를 내 세우는 인물의 정체성 혹은 이미지와 상응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효과적이다. 적절하고 타당하게 전개되는, 정당 혹은 정치인의 메시지가 때때로 아주 큰 울림을 주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선거 슬로건은 후보의 정책뿐만 아니라, 더욱 더 그의 인간적 면모, 가치(관) 그리고 감성까지 농축되어 있어야 단번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런 면에서 '저녁이 있는 삶' 은 절묘한 말의 조합으로 손학규에게 가장 어울리는 슬로건이었다.

당시에 널리 인구人口에 회자되었었고 지금까지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 슬로건들은 한 시대를 상징적으로 반영했다. 50년대의 '못 살겠다 갈아보자!', 60~70년대의 '잘 살아 보세!', 80~90년대의 '군정종식'과 '준비된 대통령' 등은 그 시대정신 또는 특정 인물을 바로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슬로건이 될 수 있었다.

‘저녁이 있는 삶' 역시, 이 시대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아도, 우리의 삶 속에서 도도히 흐르고 있는 기대와 희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정신’이라는 몫을 차지해도 될 듯싶다.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은 단지 노동 시간의 단축만을 통해 단순히 저녁 시간을 즐기는 여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녁이 있는 삶' 은 삶의 질, 복지를 논했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잃어버린, 우리 삶의 여유를 복원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와 삶의 질을 동시에 개선하려는 포부를 가졌었다. 때문에 그는 저서 &lt;저녁이 있는 삶&gt;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함께 그 답의 모색을 공론화하려고 했었다.

복지는 인간의 욕구에 바탕을 두고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복지 수준은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 Maslow가 말하는 인간 욕구 5단계 중 가장 하위인,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 에 머무르지 않았었나 싶다. 물론 지난봄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그 기본마저도 우리 사회나 국가가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지만.

우리는 흔히들 국가경제력 세계 10위권을 자랑하지만, 복지수준이나 삶의 질 수준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

눈부신 압축적인 경제성장으로 산업화와 그리고 민주화까지 달성해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가 도사리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살율과 최저의 출산율은 우리의 고단한 현실과 암울한 미래를 보여줄 뿐이다. 때문에 거대담론의 복지로써의 접근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최소한의 삶을 국가가 보편적 복지차원에서 보장해주는 사회적 안전망의 강화가 무엇보다 절실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성장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성장과 분배는 상충적이고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분법적 사고로 이를 택일의 문제로 접근하는 경향이 여전히 위력적이다.

하지만, 복지와 성장의 균형 발전론자들은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복지를 통한 성장이 오히려 성장의 모멘텀momentum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 구조가 되어 안정적으로 두 축이 서로를 견인해 나가는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그 예라는 것이다.

손학규는 복지를 보다 구체적, 실천적으로 접근했다. ‘저녁이 있는 삶’에서 주장하는 복지는 민생경제, 민생문제에 다름이 아니었다.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을 통해 국가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주는 보편적 복지를 추구했다. 대한민국은 그런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충분한 경제력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 더 잘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잘사는 공동체를 지향했던 그는, 보다 높은 수준의 인간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도록 복지수준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복지의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를 꾀하고자 했다.

즉, 성장과 분배, 성장과 복지의 균형, 노동과 인간 삶의 조건들이 조화를 이루는 복지국가를 목표로 했었다. 균형과 조화가 어우러지는 사회를 지향했던 것이다. 삶의 질과 문화가 선진적인 유럽의 복지국가를 모델링해서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제3의 길'을 제시하려고 했었다. 원대한 그의 담론은 그러나 미완의 가치로 그치고 말았다.

재작년 대선정국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 실종되었던 것과 올해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손학규가 패배하고 결국 정계를 은퇴한 것은 나로 하여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손학규란 정치인의 개인적 좌절만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었다. 일정 부분은 현재 우리 정치 수준과 상태를 반증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착잡함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차분히, 아니 좀 더 냉정하게 고찰해 보았을 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세계는 항용 시베리아 동토처럼 척박하고 매섭다는 것을 직시해야 했다. '저녁이 있는 삶'의 등장과 퇴장은 그의 서늘한 증거다.

그런 면에서 손학규의 후원회장을 지낸 최장집 교수는, &lt;저녁이 있는 삶&gt;의 서문에서 손학규를 ‘데마고그demagogue적 성격이 극히 적은 정치가’라고 완곡하게 표현했다. 데마고그(선동가)와 동전의 양면 같은 마키아벨리즘은 어쩌면 그에게 친숙한 개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정치인의 자질을 절묘하게 조어造語했던, ‘서생書生적 문제의식’은 탁월했으나 ‘상인商人적 현실감각’은 어느 측면에서는 조금 부족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럼에도 난 믿는다. ‘저녁이 있는 삶’이 내걸었던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복지’는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고질화된 승자독식의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의 견고한 벽은 무너져야 한다는 것을, 인간의 우승열패優勝劣敗를 넘어서 저마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명실상부한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시대의 도래가 필연적이라는 것을.

내 믿음의 근거는 이렇다.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공동체를 우리 모두가 염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만 경제적 수치상으로 부유한 나라가 아니라, 개개인의 삶의 질이 윤택해지고 행복해지는 나라를 우리 모두가 소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미 흠씬 풍기는 저녁 시간대를 넉넉히 향유하고 싶은 우리들의 욕구와 희망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점점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난 확신한다. 결국 우리가 나아 갈 길은 성장과 복지를 이분법적으로 택일하는 것이 아닌, 두 축이 선순환 되는 복지국가라는 것을. 그래서 지난 날 산업화를 성취했고, 민주화를 이루어 낸 것처럼, 우리는 마침내 복지국가시대를 맞이할 것이고, 그 속에서 저마다 천부天賦로 주어진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4년 올해도 혼란과 정체가 반복되고 소모적인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우리를 끊임없이 힘들게 했다.

하지만 나는 내게 무엇보다 깊게 다가 온 한 정치인의 은퇴로 다시 한 번 진정한 의미의 복지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새해에는 모두가 소망하는 명랑한 사회, 저마다의 삶이 보다 윤택해지고 행복해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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