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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의정부시 아이사랑 수필공모전 대상, 김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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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2022-09-26 17:35:47



 

 

마른 하늘 날벼락같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찰리 채플린 -

인생의 희비극에 관한 찰리 채플린의 말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덧붙인 그의 말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나는 멀리 보려고 노력한다.” 찰리 채플린처럼 나도 멀리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 내 인생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 마치 단쓴단쓴의 연속이랄까.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던 우리의 지난 시간들. 이제부터 엄마와 나의 인생, 그 달고 쓴 희비극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2년 전이다. 무더운 여름은 끝나가는데 엄마의 비극은, 아니 우리의 비극은 그제서야 막이 올랐다. 엄마는 암이었다. 쉰다섯에 암 선고를 받았다. 무서운 일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암과 더불어 부종양증후군까지. 신은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준다더니 우리에겐 가혹했다. 처음엔 무서웠고 그다음엔 화가 났다. 왜 하필 우리 가족에게 가족 모두 무탈하게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날들이었고, 아픈 엄마를 지켜보며 보살피는 일은 정말이지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마른 하늘 날벼락처럼 찾아든 암에 가족들은 절망했다. 당사자인 엄마는 슬퍼하다가 화를 내다가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하루에도 몇 번씩 사로잡혔다. 암 선고를 받던 그해 여름은 정말이지 생각하기도 싫다. 그 암담함과 참담함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두렵다.

고로케

12년 전 그 여름, 엄마와 짧은 외출을 했다. 그즈음 엄마는 자꾸만 허공을 걷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어쩐지 어지럽고 걸음이 붕붕 뜨는 것만 같다고. 엄마는 나를 안심시키려 그랬는지 자신을 안심시키려 그랬는지 더위를 먹어서 그렇다는 말만 되뇌었다. 집에 가는 길, 엄마가 빵집 진열대를 보며 고로케를 먹자고 했다. 나는 날이 더운데 무슨 고로케냐며 타박을 하고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엄마 손에 쥐여줬다. 바보같이. 엄마는 그날 고로케 대신 내가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먹어줬다. 역시나 바보같이.

엄마는 좀처럼 뭔가를 먹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고로케를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그날 고로케를 먹었어야 했다.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이 기억이 아직도 아프다. 며칠 뒤 병원 검진을 받았고 엄마는 암환자가 되었다. 항암치료 탓일까 뒤늦은 고로케를 권해도 엄마는 먹질 못했다. 그후로도 엄마는 꽤 오랫동안 입맛을 잃어버렸다. 통 먹질 못하는 탓에 팔다리는 가늘어져 가는데 항암주사 부작용으로 얼굴만 퉁퉁 부었다. 변한 모습에 엄마는 속상한지 가끔씩 거울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짧게 내쉬곤 했다.

가족이 아프면 서글픈 기억이 이렇게 조금씩 쌓여간다. 어느새 엄마는 아이가 되었고, 결국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되어버렸다. 나는 엄마를 씻기고,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냈다. 엄마는 부종양증후군으로 신경이 점점 마비됐고, 결국엔 팔다리를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엄마는 나이 들어 다시 아이가 되어버렸다. 돌아보면 지난 12년이 아득하지만, 쏜 화살처럼 그렇게 전부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은 오로지 비극이었을까

전쟁같은 치료

암을 선고받고 정신없는 세월이었다.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로 계절 가는 줄을 엄마와 나는 미처 몰랐다. 그래도 우리의 삶은 계속됐고 이것저것 사소한 추억들을 조금씩 쌓아갔다. 그랬다. 나는 조용필 가사처럼 소중한 건 모두 잊고 살았다. 엄마는 항상 내 옆에서 나를 챙겨주는 당연한 존재로만 생각했다. 나를 낳아 기르는 동안 엄마는 꽤 고단했을텐데 나는 내가 힘들어진 순간에서야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는 여름의 끝에서 암진단을 받고, 가을의 시작과 함께 항암치료를 받게 됐다. 수술이 불가능한 암이었다. 항암치료는 총 6회에 걸쳐 진행됐다. 약물 부작용으로 엄마의 머리는 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이때 엄마가 암환자라는 걸 아프게 다시 깨달았다. 우리는 결국 엄마의 머리를 비구니처럼 전부 밀어버렸다. 머리를 미는 동안 나는 울었지만, 엄마는 내내 의연했다. 우는 나를 보며 엄마는 겉으론 괜찮은 척, 속으론 눈물을 삼켰으리라.

6번의 항암치료를 거치며 암은 꽤 호전되었지만, 부종양증후군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조금씩 조금씩 악화되었다. 이름도 어려운 희귀질환이었고 치료법도 명확하지 않은 터라 의사도 우리도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현실이 되는 순간 그 암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엄마의 움직임과 일상은 조금씩 어려워졌고 망가져만 갔다.

엄마는 결국 수저질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나는 끼니마다 엄마를 아기새처럼 먹일 수밖에 없었다. 식사 후 양치질을 하고, 다시 침대에 눕히는 일까지. 당연히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으니 엄마는 아기처럼 다시 기저귀를 차게 되었고 엄마의 대소변은 내 손으로 직접 치웠다. 마치 엄마는 아기로 다시 태어난 사람 같았다. 이렇게 엄마를 온종일 돌보는 일은 점점 익숙해졌고 능숙해졌다.

산책, 둘만의 시간

결국 엄마가 암환자가 되고 휠체어 타는 사람이 되는 순간 우리는 산책을 같이 하게 됐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늘어난 수다까지. 엄마가 건강할 땐 좀처럼 않던 일들이다. 산책을 하면서 엄마가 라일락을 꽤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비 오는 흐린 날을 맑은 날보다 더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엄마가 아프기 전에 나는 그다지 살가운 딸은 아니었다. 우리 모녀는 어쩐지 서먹한 가깝고도 먼 사이였다.

팔다리를 가누지 못하는 사람을 휠체어에 앉히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누워있는 엄마를 일으켜 휠체어에 앉히고 밖으로 나서면 추운 겨울에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약간은 번거롭고 귀찮지만 집안의 답답한 공기를 뒤로 한 채 엄마와 나는 종종 산책을 나선다. 바깥 공기는 상쾌하고 기분을 한결 나아지게 만든다. 엄마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날마다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을 느낀다. 나 혼자는 그냥 지나쳤던 자연의 꽃과 나무는 엄마와 함께할 땐 종종 기쁨으로 다가왔다. 사소한 행복이 이런 거겠지.

나는 대학을 다니느라 바빴고 그런 핑계로 엄마와 나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질 못했다. 엄마가 암환자가 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물리적으로 가까워졌다. 엄마가 두 발로 걸어 다닐 때 많은 것들을 함께 했으면 좋았으리라. 후회가 많이 되지만, 그래서 서글프지만 지난 시간은 애써 잊어본다. 내 나이 스물넷에 엄마가 암환자가 된다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준비되지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서툴렀고 가끔씩 엄마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엄마도 예상치 못한 아니 예상하지 않은 비극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우리는 조금만 슬퍼했고 금세 적응해나갔다.

수행같은 일상

사지를 못쓰는 엄마와의 일상은 나를 구도자(求道者)로 만들었다. 나는 특정 종교에 얽매인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가 함께하는 일상은 나를 단련시키고 수행의 길에 놓이게 했다. 나와 엄마의 평안을 위해 나는 애쓴다. 지난 12년이 쉽지만은 않았으나 큰 흔들림 없이 우리는 서로를 믿고 의지했다. 마음을 다스리며 엄마와 나의 일상을 돌보는 힘은 오로지 사랑에서 나온다. 나는 엄마가 힘없이 쓰러지고 나서야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고 그 안의 사랑을 생각했다.

서로 서먹했지만 암으로 인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가까워졌다. 암과 앎. 암을 통해 나는 엄마를 알게 되었다. 힘든 시간을 지나왔지만 그 사이에 별사탕처럼 행복과 사랑이 섞여 있었다. 가족이라는 건, 그 안의 사랑이라는 건 설명하기 어려운 맹목적인 그 무언가이다. 엄마와 나의 지난 시간들 속 우리의 웃음과 울음이 대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고만고만하지만 불행은 가지각색이라 했다. 우리는 색다른 불행을 겪었지만 남들만큼 행복하다. 비극이었지만 우리는 기어이 희극같이 살아냈다. 엄마와 나의 지난 시간들은 눈물로 회상하고 다가올 시간들은 기쁘게 기다린다. 엄마가 다시 걷게 되는 기적은 없겠지만, 우리가 살아온 시간들은 기적이었다. 가족의 사랑으로, 그 힘으로 버틸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더는 욕심내지 않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만을 그저 소망한다.

엄마에게

엄마,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몸도 마음도 모두 부서진 시간들이었는데 견뎌줘서 고마워요. 우리에게 가혹했던 세월이었지만 우린 서로 의지하며 제법 멋지게 이겨냈어요. 그렇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함께한 시간보다는 짧겠지만 그 시간 귀하게, 행복하게 쓸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할게요. 살가운 딸이 아니어서 미안합니다. 표현이 서툴러서 진심이 전부 닿았을지 모르겠네요.

시련이 없었다면 더 행복했을테지만, 그 시련 때문에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가까워졌음은 분명해요. 나를 낳아주셔서, 사랑으로 길러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더는 아프지 마세요.

암과 앎, 싱거운 말장난 같지만, 우리 가족의 삶에 분명한 전환점이 됐어요. 그 시간 속에서 이전과 달리 서로를 이해하고 깊이 알게 되었으니까요.

우리 앞에 놓인 길이 부디 꽃길이길 바라지만, 설령 질척이는 험한 길이라도 나는 당신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영원히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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